]"헌재의 한일청구권 합헌 결정으로도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3-19


[정면인터뷰]"헌재의 한일청구권 합헌 결정으로도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하종문 한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자유토론방

김재근 | 조회 29 |추천 0 |2015.12.23. 21:02 http://cafe.daum.net/iljegongjejunbi/JlLx/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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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인터뷰]"헌재의 한일청구권 합헌 결정으로도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는다"-하종문 한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YTN 라디오 ‘최영일의 뉴스! 정면승부’]
■ 방 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5/12/23 (수)
■ 진 행 : 최영일 시사평론가

◇앵커 최영일 시사평론가(이하 최영일): 헌법재판소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청구된 헌법 소원에 대해 각하 결정을 했습니다. 이번 청구가 헌재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인데요. 한일 청구권 협정이 강제 동원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을 제한하는지를 판단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와 이번 결정의 의미와 앞으로의 한일 관계에 대해서 짚어보고요. 이어서 일본 현지의 홍형 통일일보 논설주간 연결해서 오늘 결정에 대한 일본의 반응 알아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의 대일본청구권을 제한한 한일청구권협정의 위헌 여부가 6년 만에 결론이 났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각하 결정을 내렸는데요. 이번 결정의 의미와 앞으로의 한일 관계. 하종문 한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연결해서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하종문 한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이하 하종문): 네. 안녕하세요.

◇최영일: 이 한일청구권협정. 일본이 징용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인데요. 1965년에 맺어졌습니다. 당시에 어떻게 이 협정이 체결됐던 것인가요?

◆하종문: 예. 한국전쟁 시기 1951년부터 협정 준비 작업이 시작됐었고요. 14년 동안 걸쳐서 맺어졌는데. 최종적으로는 당시 전체 유무상 합쳐서 5억 달러를 받으면서 한국과 일본의 두 나라 법인을 포함한 국민의 재산과 권리 이익 청구권. 그러니까 한일 양국 사이의 식민지 시기에 있었던 여러 가지 건에 대한 모든 것들을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 이렇게 하면서 협정이 맺어졌거든요. 그러면서 일본 쪽에서는 계속 이 협정을 가지고 한국에서 위안부든, 강제 징용이든 모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할 의무는 1965년에 해결이 되었다고 하는 근거로서 이 협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최영일: 네. 오늘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판결. 결정. 계류됐던 것이 최장기 미제 사건이라고 하던데요. 그만큼 이 사안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고 볼 수 있겠죠?

◆하종문: 예. 아무래도 6년 정도가 걸렸다고 하는 것 자체도 그렇고요. 그동안 한일 관계 워낙 급박하게 변했다는 것도 고려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헌재로서는 다른 여러 가지도 많았겠지만 이 사안은 워낙 결과 자체가 만약 위헌이라고 나왔으면 큰 파장이 일었을 테니까, 그런 부분의 고려는 있었다고 봐야겠죠.

◇최영일: 그렇군요. 그런데 어쨌든 그 결과는 오늘 헌법재판소의 각하 결정으로 나왔습니다. 위헌 심판 대상은 아니라는 것인데요. 오늘 헌재의 결정. 교수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하종문: 저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외교적인 판단을 고려한 것이다. 한일 관계의 고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 내용을 보게 되면 미수금에 대한 내용을 2,000원 정도로 2,000배로 계산해서 주는 것 자체가 어떤 것인가. 그것에 대한 판단은 법적으로는 이 돈 자체가 시세적인 돈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청구권 협정과 상관이 없다는. 굉장히 무미건조한 느낌의 법적인 판단이거든요. 그리고 위헌 심판 대상이 되는 청구권 협정과 상관이 없고. 위헌이라고 하더라도 미수금 결정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개의 사안이 별개의 사안이라는 판단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오히려 한일 관계라든지 이런 복잡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법적인 의미에서의 판단이다는 쪽으로 우리가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영일: 그러면 교수님. 일본 기업에 대해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가 현재 있잖아요. 그러면 이번 결정이 이런 소송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하종문: 예. 말씀드린 대로 두 개의 사안이 별도이기 때문에. 일본 내 신문, 특히 요미우리 신문 같은 경우에서는 결국 현재의 한일청구권협정이 합헌이라는 판단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것도 조금은 견강부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떤 말이냐면. 현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개인청구권에 따른 소송이거든요. 그래서 청구권협정에서 사실상 양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이라는 것을 서로 간에 상쇄한 셈인데. 개인청구권은 살아있는 것이고, 지금까지도 한국 법원은 그 원칙에 입각해서 판결을 내려왔기 때문에. 앞으로의 소송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별로 생각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보입니다.

◇최영일: 그렇군요. 그러면 지난 2012년에는 우리나라 대법원이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 이렇게 판단했었잖아요. 그러면 그 당시 대법원의 판단과 지금 헌재의 결정은 상호 충돌은 없는 건가요?

◆하종문: 저는 충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1991년이 됩니다만. 당시 일본 외무성의 조약국장이 개인청구권은 유효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국내법적으로, 즉 한국의 국내법에서 개인의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유효하다고 했었고. 대법원은 그에 따른 것을 확인한 셈이거든요. 단지 문제는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오더라도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집행하려면 국가가 외교보호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청구권협정에서 걸리게 되니까 현재의 청구권협정이 갖는 한계와 모순이라는 부분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고. 이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오히려 한일 관계에서 큰 쟁점이 되는 것이죠.

◇최영일: 네. 교수님. 올해 위안부 협상. 성과 없이 끝나버렸고요. 한일 관계는 여전히 역사 문제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헌재 결정도 나왔으니까 내년에도 계속 유사한 상황이 유지될까요? 아니면 한일 관계에 어떤 해법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하종문: 오늘 윤병세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얘기를 했던 부분은 굉장히 낙관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일본에서도 보도를 하던데요. 그런데 그 문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현재의 법적인 틀의 충돌이라는 부분이 있고. 양국 정부의 진지한 노력이 한국 정부로서도 저는 부족한 면이 많고, 일본도 마찬가지 상황이거든요. 따라서 한일 관계 해법은 특별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적어도 이 문제로 양국의 국민 감정이나 여러 가지로 충돌이 있는 것이 한일 관계 전체의 손해라는 굉장히 대국적인 판단, 대승적인 판단이라는 점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 가능성이 유일하게 열려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영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하종문: 네.

◇최영일: 지금까지 하종문 한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였습니다.